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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윙걸즈> 스틸
ⓒ (주)팝엔터테인먼트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일본 동북지방 야마가타의 어느 소도시 고등학교. 여름방학을 맞아 지루한 보충수업에 다들 딴청을 부리던 어느 날. 도무지 수업에 관심이라곤 없던 '토 개인회생진술서 모코'와 친구들은 마침 야구부 예선 시합 응원차 막 출발한 합주부가 단체 도시락을 빼먹었다는 걸 간파한다. 도시락을 가져다준다는 구실로 보충수업을 빼먹고 전철에 몸을 실은 채 경기가 열리는 야구장으로 향한다. 하지만 작은 일탈에 잔뜩 들뜬 일행은 내려야 할 정류장을 깜박하고 건너뛴 데다, 한여름 무더위에 도시락을 부주의하게 관리한 바람에 상한 상태로 배달하 홈플러스인터넷 고야 만다. 그 결과는 합주부 인솔교사를 비롯해 단 1명을 제외한 전원의 식중독 응급실행이다.
지역 뉴스에 속보로 뜰 정도의 사건을 일으키고도 토모코 일당은 천하태평이다. 하지만 이들이 도시락을 한 개 빼먹은 걸 간파한 (도시락이 모자라 매점에서 빵을 사 먹고 무사했던) 합주부의 유일한 생존자 '나카무라'에게 덜미를 잡힌다. 다음 시합에 학자금대출 저금리 전환 2차 응원단이 필요한 그는 진상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합주부 결원을 채워달라고 요청한다. 다른 방도가 없는 터라 울며 겨자 먹기로 토모코 무리는 임시 부원으로 참가한다. 그러나 마음에도 없는 합주부 활동에 열심히 임할 리 없다. 얌전하고 말수가 적은 모범생 '세키구치'만 열성적으로 참여한다.
심드렁하게 시간만 보내려던 토모코와 친구들이지만, 스마트폰 갈아타기 책임감 강한 나카무라의 강제 특훈에 시달리며 기본부터 다져나간다. 악기 소리조차 내지 못하던 이들에게 나카무라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해 폐활량 부족을 해결해 간다. 처음엔 보충수업 땡땡이 좀 치려다 이게 무슨 고생이냐며 투덜거리던 그들은 무의미한 시간 보내기가 아니라 노력한 만큼 발전하는 체험에 조금씩 자세를 바꾸기 시작한다. 열정은 금방 전염된다. 아직 서울시 소상공인 대출 어설프기 짝이 없긴 해도 각자 역할을 분담해 도레미파솔라시도 음정 박자는 어찌 맞출 단계에 도달한다. 이참에 기왕 하기로 한 것 제대로 시합 응원까지만 해볼까 다들 마음이 모아진다.
그런데 예상보다 일찍 기존 부원들이 식중독에서 회복해 복귀하자, 임시방편에 불과하던 토모코 일행은 어느새 정든 악기를 원래 임자들에게 넘기고 쫓겨날 팔자다. 뭔가 가슴 속에서 아쉬움과 분함이 터지듯 분출한다. 다른 친구들은 역시 별 의미 없었다며 떠나지만, 토모코와 세키구치, 나오미, 요시에 등 몇 명은 미련이 남았다. 토모코는 집에 있던 컴퓨터와 동생의 게임기를 몰래 팔아넘겨 중고 색소폰을 장만하고, 이에 고무된 친구들도 함께 아르바이트해 부족하나마 악기를 장만한다. 나카무라와 의기투합한 그들은 함께 합주부에서 못 이룬 꿈을 이루고자 연습에 매진한다.
일본 청춘물 상징작의 귀환
▲ ?<스윙걸즈> 스틸
ⓒ (주)팝엔터테인먼트
<스윙걸즈>가 돌아왔다. 국내 첫 개봉(2006년)으로부터 근 20년 만이다. 실제 고등학생이던 영화 속 주연 배우들도 이제 40대 전후에 접어들었을 테다. 세월의 흐름이 야속하기만 하다. 수입되는 외국영화 중 미국영화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일본이지만, 일본문화 수입개방이 1990년대 말이 돼서야 공식적으로 이뤄진 탓에, 한동안 이미 볼 사람은 야금야금 알아서 구해 봤고, 특별한 배경 없이 소개되는 작품은 고전을 면치 못하던 시기가 있었다. <스윙걸즈>는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렵던 그 당시, 일본 학원 청춘물의 수요를 확장한 기념비적 작품이라 유독 감회가 새롭다.
이 영화가 상징하는 일본 특유의 소 장르, 청춘 코미디는 무수한 변주를 거듭하면서 일본 영화 하면 떠오르는 요소 중 하나로 국내 관객에 깊숙하게 각인되었다. 대충 떠올릴 법한 몇 가지 예를 들자면 한국의 것과는 비슷하면서도 뭔가 다른 교복, 찰랑거리는 물방울과 끝없이 파란 하늘, 빙수와 라무네의 질감, 무엇보다 풋풋한 첫사랑과 가을 축제의 열정 같은 것들은 입시 지옥에 모든 게 결박되는 풍경과 대비되며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스윙걸즈>는 그런 일본 청춘 영화 중에서도 하나의 '원형'에 해당한다. 그냥 보면 흔하디흔한 전형적인 '일본풍' 가벼운 오락영화다. 10대 주인공들이 펼치는 슬랩스틱 개그로 점철된 그렇고 그런 영화에 불과해 보이지만, 요절복통 코미디 속에서 마치 <슬램덩크>를 연상케 하는 뭉클함과 흐뭇함이 스며드는 감각을 경험하고 나면, 확실히 '오리지널'의 마성을 체감할 수 있다.
물론 해당 부류 중 다수는 그저 적당히 시간 보내기 전용, 혹은 소수끼리만 통하는 코드로 한계에 갇히지만, 이 영화는 누구나 어렵지 않게 접근을 허락하면서도 청춘물의 궁극적 목표인 '성장' 서사를 아닌 척 시치미 뚝 떼며 제대로 구현해 버린다. 깔깔대며 웃던 와중에 문득 어떤 찡함에 닿는 그럼 감흥을 선물하는 영화다. 어떻게 보면 그저 찰나의 감성에 불과할지라도, 영화 속 주인공들은 계산적으로는 크게 장래에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소소한 이벤트에 그야말로 모든 것을 걸어본다. 그리고 후회 없이 후련하게 결과에 승복하고 뒤끝 늘어지지 않게 훌쩍 사라진다. 그래서 허무한 매력이 속된 표현, '간지'로 철철 흘러넘친다.
우리는 흔히 일본 사회와 청소년을 꿈을 잃은 집단이라 단정하고 낮춰 보곤 한다. 한국처럼 촛불을 들고 거리에 용감히 나서는 모습도 드물고, 같은 아이돌이라도 케이팝 아이돌의 무림 고수처럼 극한의 수련을 거친 자세와 비교하면 일본 아이돌의 춤과 노래는 학예회 수준으로 보인다. 하지만 특정 몇 분야에서 청소년에게 희생을 당연시하며 몰아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너른 저변과 다양한 결로 구축된 그들의 일상 속 문화예술 역량은 참고하며 배울 것투성이다. <스윙걸즈>는 그런 양국 간 대비의 극적인 예시이기도 하다.
청춘의 눈부신 매직아워를 향한 그리움
▲ ?<스윙걸즈> 스틸
ⓒ (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 속 고등학생들은 시골 동네에서 별다른 꿈 없이 나날을 보낸다. 이들은 미래에 대해 별다른 꿈도 거창한 목표도 갖고 있지 않다. 국내에도 <노다메 칸타빌레> 등 출연작으로 상당한 지명도를 가진 우에노 주리가 담당한 토모코 역시 학교건 집에서건 무계획 자체인 '잉여' 캐릭터다. 부모님은 아무 생각 없이 산다며 근심 걱정이 태산이고, 한참 어린 여동생에게도 언니 대접받긴 글렀다. 그저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오늘만 사는 존재다. 친구들이라고 다를 게 없다. 수업은 재미없고, 마땅히 하고픈 다른 일도 없다. 그저 우루루 몰려다니며 밉지 않은 사고를 치는 나날이다.
그런 그들에게 아마 인생 처음으로 향상심과 인정 욕구가 발현된다. 하필 합주부다. 그것도 엉겁결에 선택한 빅밴드 재즈, 자신들이나 부모님이나 양복 입고 와인 잔 홀짝이며 젠체하는 스윙을 연주하기로 한다.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낯선 악기에 도전하고 득음하는 과정은 이들에겐 지루한 동네에서 탈출하는 모험과도 같다. 그렇게 작정하고 부딪히니 우여곡절 겪긴 해도 길이 열리고 동료가 늘어난다. 부모님과 집에만 기대며 대책 없던 고교생들은 악기를 장만하기 위해 마트 매대와 계산대에 서고, 송이버섯을 채집하다 멧돼지에 쫓기는 등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아간다.
한국의 동년배라면 당장 학교와 부모에게 붙들려 교실로 학원으로 질질 끌려가기 딱 좋은 조건이다. 얼마 전 화제 된 <선의의 경쟁> 드라마처럼 밤샘 공부해서 내신을 올려도 시원찮을 판에, 대학 입시나 취업 경로에 도움 될 리 없는 밴드 합주에 정신이 팔려있으니 말이다. 실제 배우들이 3개월간 합숙하며 갈고 닦은 재즈 연주는 제법 합이 들어맞지만, 그저 운치 있게 들어줄 수준에 불과하다. 어릴 적부터 엘리트 교육을 받아도 전업 예술가가 되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란 걸 우리는 모두 안다. 일본이라고 딱히 다를 바 없다. 그런데도 이 변두리 청춘들은 그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보상도 기대하지 않고 기꺼이 바친다.
색소폰을 든 토모코는 그저 보충수업이 듣기 싫었을 뿐이다. 트럼펫을 맡은 요시에는 합주부가 응원하는 야구부 선배에게 잘 보이고 싶은 일념이다. 세키구치는 트럼본을 불며 합주에 참여한 덕분에 외톨이 신세를 벗어날 수 있다. 드럼을 담당한 나오미는 그저 친구 패거리를 따라다니다 우연히 눌러앉은 셈이다. 피아노와 리더 역할을 소화하는 나카무라는 합주부 1군에서 적성에 맞지도 않은 심벌즈만 울려대다 마침내 적성을 발견했다. 그렇게 판에 박힌 쳇바퀴처럼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청춘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들만의 힘으로 뭔가를 이룩한다.
물론 영화가 끝난 후 이들에게 딱히 인생 역전 기회가 로또처럼 떨어질 일은 없어 보인다. 잠재된 천재성을 객석에서 누군가 유심히 보고 스카우트하거나,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전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연주를 마치고 함께 꺄륵 웃으며 하는 뒤풀이가 전부일 테다. 하지만 그들에게 내신등급 한 단계 올리는 것과 비교해 영화 속 동아리 활동의 경험이 더 하찮은 게 과연 맞을까. 적어도 그들은 노력하고 협동하면 함께 성취할 수 있다는 귀중한 경험치를 얻지 않았는가.
지금 한국 사회에 절실한
▲ ?<스윙걸즈> 스틸
ⓒ (주)팝엔터테인먼트
오랜만에 다시 만난 영화는 어딘가 익숙한 냄새를 물씬 풍겼다. 성공 사례로 자리매김한 '레퍼런스' 급 작품이기에 숱한 아류가 양산되었기 때문이다. 일본풍 만화적 상상력이 적재적소에 발휘되고, 망가지길 두려워 않는 (지금은 다들 유명해진)청춘 배우들의 눈부신 몸 개그와 스윙 재즈의 대중적 매력을 발산하는 사운드트랙까지 특별한 것 없어 보이지만 은근히 비범한 구석이 속속 발견된다.
얼마 전 재개봉한 <위플래쉬>와 이 영화는 그야말로 대척점에 있다. 최고의 재즈 연주자가 되기 위해 가족도 연인도 버리고 절대무공을 연마하는 주인공이 누구도 근접할 수 없는 고난도 연주를 뽐내는 풍경 vs 동네 행사나 학예회 수준에 불과하지만, 모두가 행복해하는 '스윙걸즈' 밴드의 협연. 정답은 없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당연히 후자가 아닐까. 냇 킹 콜의 곡 'L-O-V-E'가 흘러나오는 피날레를 마주하면 누구나 그럴 테다.
▲ ?<스윙걸즈> 스틸
ⓒ (주)팝엔터테인먼트
<작품정보>
스윙걸즈
Swing Girls, スウィングガ?ルズ
2004｜일본｜하이틴 코미디
2025.03.26. (재)개봉｜103분｜12세 관람가
감독 야구치 시노부
출연 우에노 주리, 칸지야 시호리, 모토카리야 유이카.
토시마 유카리, 히라오카 유타, 타케나카 나오토
수입/배급 (주)팝엔터테인먼트
제공 (주)컨티뉴옥션, (주)세움토건, (주)영화사 한진
▲ ?<스윙걸즈> 포스터
ⓒ (주)팝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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